어제 영화관에서 코코 4차를 찍었다. 4회차가 되고 나서야 내가 참을 수 없이 울던 노래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El Latido de mi Corazon>
4회차를 보는 내내 이 노래의 장면이 나오면 그렇게 울어대놓고선 <Remember Me>밖에 기억하지 못하다니, 역시 나답다. 당분간 이 노래가 내 위로점이 될 것 같다.
특허 거절 결정서를 받은 뒤, 현재 내 머릿속은 공황상태로 변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끊임없이 부딪히는 상태. 몸은 축축 처지는데 마음은 무언가를 해내라고 자꾸 돌팔매질을 한다. 자금상태가 나쁜 상황도 아닌데 자꾸 상황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서 호주 워홀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나간다. 모든 게 별 거 아닐 거라고 여겨왔던 지난 3개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지금 무척이나 흔들리고 있다. 아마도, 아마도 최선을 다했던 일이 거절당했다는 실망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참 웃기게도 거절 결정서를 읽어내리는 순간 머리의 한 가운데부터 흰 물감이 서서히 번져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나한테 그렇게 큰 의미였구나, 이제서야 알아챈다. 백화현상이 점점 퍼져나간 다음은 짜증이 팍 치밀어 올랐고 그 후 결정을 내린 심사관 탓을 하다가, 마지막은 실험을 더 진행하지 않았던 내 탓으로 범람했다. '내 편은 나밖에 없는데...' 하는 내 안의 소리를 한 쪽으로 밀쳐버리고 산책하는 내내 '조금 더 덜 잤어야 하는데, 더 독했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쏘아댔다. 다 내가 무른 탓인 것 같은 순간들, 남에게 쏘아댈 순 없으니 나에게 던져버리고 마는 비난들.. 그게 지난 몇 년간 스스로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가장 잘 기억하는 나이면서도 결국 또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속력을 내어 벗어나는 중이니 다행이다.
이틀 동안 마음에 가끔씩 찾아오는 공허함에 흠칫 놀랐다. 이 느낌, 참 오랜만이면서도 달갑지 않은 느낌. 더 스스로 갉아먹기 전에 도움을 청해볼까 싶다.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은 뒤 특허 문제를 담당 교수님께 상의했다. 이미 졸업한 제자인데도 흔쾌히 도와주신다는 교수님. 호주 워홀 문제는 채진언니에게 연락했다. 채진 언니가 아는 사람에게 일자리와 집을 물어봐 준다고 한다. 안 지 얼마 안 된 사이인데도 세심하게 도와주려는 언니. 어렵지 않게 내 마음의 짐들을 남들과 나눠 들었다. 가끔은 이렇게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26살이 되어서야 알다니.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스스로를 덜 탓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물음들은 묻어두고 지금의 나에 만족하기로 결정한다.
여행한 뒤 '수인이는 인복이 정말 많네-'라는 칭찬과 감탄을 자주 들었는데, 나도 몰랐던 내가 가진 축복이다. 오늘 두 분께 연락하고 도움을 청하고 나니 더 새삼스럽게 내가 가진 인연들의 고귀함이 와닿는다. 덕분에, 덕분에 오늘 밤에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잠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손 내밀 수 있는 인연들이 내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 또한 나의 또 하나 위로점이다. 언젠간 이 점들이 이어져 더 단단한 모양새를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