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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Holiday in AU/1. 시드니

[워킹홀리데이 D+66~D+67] 믿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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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Holiday

D+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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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018


D+66, 01/11

11월 전갈자리 산수도인 (나 이런 거 엄청 좋아한다) 을 보니

이번 달은 작고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 했다.

작은 일을 잘 해내야 큰 일도 맡길 수 있으니 잘 아는 것도 확실하게 처리하라고 나와있었다.

음- 괜찮은 충고인데?

이번 한 달은 큰 일을 맡길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안나가 11월부터 들어가는 새로운 메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오늘은 11시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식당 점심타임은 처음이라 설레는 걸?

이제 안나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손님을 케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서 다행이다.

예전에는 사소한 거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했었는데 이제는 뭐가 어디에 있는지, 필요한지를 아니깐 나도 편하고 안나도 편할 것 같다.


근데 안나가 오전에는 그렇게 바쁘지 않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오늘따라 디너 시간만큼 바빴다.

처음에 단체 관광객 8명이 들어올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우와- 단체 관광객은 첨이다~'하면서 즐거워했다.


어쨋든 폭풍같은 하루도 지나가긴 지나간다.


오늘 기분 좋았던 일이 있다면 

1. 가게에 자주 오는 할아버지, 아빠, 딸 손님이 있는데 (늘 같이 옴)

그 딸이 항상 먹는 메뉴를 기억하고 세팅해주니깐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아빠가 꼭 사시미에 진저를 싸먹길래 타이밍에 맞춰 진저를 더 가져다 줬더니 

나중에 이름을 물어보면서 테이블을 look after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해줬다.


2. 가게에 자주 오는 모녀가 있는데 그 테이블을 담당하니 나중에 애기가 나한테 이름을 물어봤다.

깔깔 진짜 어린 애기인데 이름 물어보고 뭐 가져다 줄 때마다 고맙다고 "Thank you, soo" 했다.


3. 오늘 전화주문은 클리어하게 다 받았다.

더블체크 하니깐 실수도 없고 이제 메뉴도 다 알아서 이지-피지.

아니다 뻥이다. 쉽진 않다.


오늘 사장님도 나에게 점점 늘어간다고 칭찬해주셨고, 손님들이 괜찮은지 체크하면서 사케나 차를 나눠주는 것도 사장님이 알려주셨다.


이제 정말 시즌인지 손님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래도 이 동네 손님들이 정말 나이스해서 주문 실수가 생기거나 오래 웨이팅 해야 하는 경우에도 무조건 괜찮다고 하지

화내거나 재촉하는 일이 없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매우 낮다.


사장님이 자꾸 카페 금요일 그만두고 오라고 하시는데.. 흑흑

노엘하고 내일 face to face로 얘기하기로 해서 "저도 몰라요."만 시전하고 있다.

그래도 내일 너무 바쁠 것 같은지 사장님이 우버 불러줄 테니깐 끝나자마자 와달라고 해서 오케이했다.

약까지 했다.

매우 바쁘겠지만 그래도 레귤러 커스터머들을 보는 것도 좋고 일도 이미 몸에 익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오히려 주문이 꼬이거나 밀려서 주방에서 음식이 타이밍에 맞춰서 안 나오면 그게 더 스트레스다.


어쨋든 오늘은 잘했어.


내일 노엘과 얘기하면서 할 말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졸려서 큰 일이다.


D+67, 02/11

오늘은 카워시 출근 날, 사실 지난 주 진상들의 연속된 방문으로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내가 시급을 올려주지 않으면 리셉셔니스트를 그만하겠다고 말했고 그거에 대해서 면대면으로 오늘 얘기하기로 했다.


5시에 우버 예약이 되어있어서 아침에 노엘에게 전화해서 언제 올거냐고 물어본 뒤 5시에 꼭 가야하니 최대한 일찍 와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1-2달러도 아니고 5달러 많이 달라고 부른거라서 받아들여줄 건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안 받아들이면 차라리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있었다.


오늘 하루는 다행히 진상은 없었고, 노엘이 도착해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노엘은 처음에 금,토,일 3일 동안 얼마 이상의 매출이 나오면 보너스를 주는 식으로 제안을 했는데

난 그렇게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아가며 하고싶지도 않고, 손님 한 명당 얼마인지 계산하며 대하고 싶지도 않다고 얘기하며 거절했다.


30-50분 간의 대화 끝에 시급 타결, 딱 내가 원하는 만큼 타협봤다.

얘기하고 싶은 것도 다 얘기했고 노엘에게 내가 얼마나 평소에 노력했는지 얘기했더니 노엘이 받아들여줬다.

여기서 일하는 한 달 동안 열심히하고 손님들에게 잘 하는 걸 노엘도 봤고

앞으로 카페 리모델링이 들어간 후에 메뉴도 내가 고민해서 정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무료 커피를 주는 것이나 카워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간식을 주는 것도 내 권한으로 넘어왔다.

정말 이제 나도 더 책임감을 가지고 고객관리를 해야겠다!

아 기분 너~무 좋아.


그리고 퇴근 후 레스토랑 사장님이 불러주는 우버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마지막에 노엘이 "역까지 태워다줄까?" 라고 했는데 "내 레스토랑 사장님이 내가 필요하다고 우버 예약해줬어!"라고 한 것까지 완벽.

가연이가 듣고 어디서나 필요한 인재 같았겠군.. 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둘이 주접떨었다.


오늘 레스토랑은 매!우!매!우 바빴다.

심각하게 바빴는데 T/A 주문도 커다란게 많이 들어와서 T/A를 빼느라 홀이 잘 운영이 안 될 정도였다.

나중에는 그냥 오늘 T/A를 닫아버렸다.


그리고 오늘 어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자매가 주문을 잘 못 했는데 그것 때문에 가만히 있던 나도 혼나고

셰프가 나에게 짜증내는 것도, 내가 내 잘못 아니라고 억울해 하는 것도 그 손님들이 다 봐서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돌아갈 때 포옹하고 잘 해결되긴 했는데 그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또 너무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주방에서 주문은 밀려오지, 홀에서는 재촉하지 셰프들이 짜증나는 건 알겠는데

너무너무 짜증을 내서 왠만하면 짜증이 안 나는 나도 마지막에는 괜히 짜증나서 눈물이 핑 돌고 

솔직히 식당에 실망도 했다.

메뉴를 줄이던가 T/A를 디쉬 수로 잘라서 빨리 끊던가 해서 성수기에 돌입한 지금 무슨 대책이라도 필요한 것 같다.


집으로 가면서 안나에게 정중하게 문자를 보냈더니

안나도 잘 받아줘서 여차저차 하고싶은 말도 다 했다.


여기서 오래 일하고 싶은데 이 상태로 계속 바쁜데 대책이 안 생기면 답이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요리할 기운이 1도 남아있지 않아서 집 앞 한식당에 가서 미니족발을 먹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고 기분 좋고 팁도 두둑히 두고 왔다.

오늘 나도 큰 것 (시급 인상)을 받았으니 누군가에게 베푸는 하루이고 싶어서.


오늘 레스토랑에서 날 불러준 것도 그렇고

노엘과 시급 인상이 잘 된 것도 그렇고

누군가에게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해서 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