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 김애란 / 문학동네 / 2017년 12월의 독후감
춥다고들 한다. 첫 눈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찾아왔다. 가로등 빛 아래로 흩날리는 눈, 얇게 쌓인 눈에 남긴 발자국 같은 사진이 곳곳에서 올라오고 친구는 한파주의보의 알림을 내게 전송하며 말했다. “넌 좋겠다. 여긴 너무 추워.”
따뜻한 도시에 3개월간 집을 얻었다. 바쁘게 풀어지고 싸지던 내 배낭은 장롱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몸에 박제한 듯이 챙기고 다니는 여권은 책상 위 파우치에 곱게 넣어놓았다. 집 근처에 요가를 다닐 수 있게 짐도 3개월 끊었다. 사실 나도 어딘가에 속해있고 싶었다. 어느 국가에, 어느 도시에, 어느 집에. 조금 더 안정감을 느끼면 내 마음도 지금보다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택한 결정이었다. 집을 얻은 후 며칠 동안을 악몽으로 밤을 설쳤다. 몸이 무거웠고 그 덕에 마음도 물을 먹은 듯 했다. 모든 것이 괜찮았지만 그래서 무엇이 잘 못 된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빳빳하게 서있던 뒷목이 책을 읽고 한참을 울어낸 후에야 풀어졌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깐.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바깥은 여름 중 <가리는 손> 243p
3개월의 시간동안 내 인생 어느 때보다 많은 이별과 만남을 되풀이했다. 만남 하나하나를 곱씹자면 운명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지만 이별 하나하나를 곱씹을 땐 남겨진 사람으로서, 두고 온 사람으로서의 생채기가 아직도 시름시름하다. 서로의 궤도 속에서 찰나 스쳐지나간 인연들이 큰 궤적을 남겼고 결국엔 헤어졌다. ‘우리 나중에 여기 또 오자’라는 지켜지지 않을 약속들도 몇 번이나 내뱉었다. 정말 다시 오고 싶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오지 않겠지. 알면서도 괜스레 섭섭한 마음을 짜내어본다.
덥디 더운 이 치앙마이에도 겨울이 왔다. 따뜻한 도시에 겨우 정착했건만 여기도 겨울은 존재했다. 눈도 내리지 않고, 보일러를 켜지도 않는 겨울이지만은 그래도 새벽과 밤에는 바람이 차졌다. 당분간은 잘 헤어지지 않는 어른이기를 바라며 오늘은 아이스커피 대신 따뜻한 자스민티를 시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