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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 마르탱 파주 / 열림원 / 2016년 8월의 독후감 내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들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등에 있는 왕점, 음식을 잘 가리지 않는 식성, 풍선에 바람 빠지듯 지치는 체력 그리고 비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비를 찬양하고 사랑하고 분석하고 이입하는 작가의 글 속에서 나는 예전 기억들을 타래처럼 꺼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학교가 가기 싫던 어느 날은 평소 자주 찾아오던 어지럼증을 핑계로 자리에 누워서 등교시간이 다 되도록 억지로 일어나지를 않았다. 지금 안 일어나면 정말 지각이다,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누워있으면 되니, 학교 갔다가 아프면 돌아오라는 말을 거쳐 엄마의 입에서 ‘나는 모르겠다. 네가 선생님께 연락드려라’가 나올.. 더보기
그림과 그림자 그림과 그림자 / 김혜리 / 앨리스 / 2016년 9월의 독후감 무덥디 더운 여름의 끝물이다. 아니 이미 끝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에어컨을 껐다켰다 시종일관 못살게 굴던 일과도 끝이 났고 한쪽 구석에 넣어둔 긴팔잠옷도 夏眠을 끝냈다. 아마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이 왔나보다. “빛이 사위고 그림자가 깊어지면 사소한 디테일은 사라지고 자질구레한 모든 것이 퇴장한다. 사물은 위대하고 강력한 덩어리로 보인다. 단추는 보이지 않지만 옷은 남는다. 옷은 보이지 않지만 모델이 남는다. 모델도 보이지 않게 되면 그림자가, 그림자조차 사라지면 그림이 남는다.” (54p) 겨울에 가까이 갈수록 해는 짧아지고 어둠이 길어진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퇴장하고 단순한 진실들만 남는 순간이 길어진다. 이 책에서 얻은 나의 위안이다. 쉽.. 더보기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 최은영 / 문학동네 / 2016년 11월의 독후감 가끔은 스스로도 어이없을 정도로 나사가 빠질 때가 있다.뭐 하나를 잠깐 손대도 실수하고, 그 실수가 평소 같으면 일어나지도 않을 어처구니없는 일임에 기함한다. 그럴 땐 주변인에게 느끼는 미안함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를 향한 모멸감과 자괴감이 스믈스믈 피어오른다. ‘왜 나는 이정도 사람일 수밖에 없을까’하는 생각들.보통 이런 날들은 하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4-7일 정도 지속되곤 하여서 크고 작게 일어나는 일들을 수습할 마음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무자비한 날들이다. 한참 그러던 때에 독서모임에 올라온 책이 였다. 제목만 봐서는 일어 번역체가 가득담긴 일본소설인 줄 알았다. 그 당시엔 마음에 여유가 없어 우선 핸드폰 e-book에 다운.. 더보기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 시공사 / 2017년 1월의 독후감 해가 바뀌었다. 스스로에게 약속해온 날이 다가오고 있다. 과거에도 나는 감당하지 못 할 것들을 이리저리 펼쳐놓고 허둥대고 애써 최선을 다해 수습해대다가 결국 지쳐 우는, 그래도 어떻게든 주섬주섬 파편들을 모아놓고 마무리하는, 그런 순간들을 아주 많이 겪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이었으니 몇 해 전의 내가 얼마나 조심성 없이 일을 벌이는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만 한데 과거엔 치기로라도 버텨지던 그 시간들이 요즘에서는 나에게 아주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증명해야한다는 부담으로 말이다. MURR-MA[무르-마] : 물속에서 발가락으로 무언가를 더듬더듬 찾는 행동.상상해본다. 물속에서 발가락으로 무엇을 .. 더보기
바깥은 여름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문학동네 / 2017년 12월의 독후감 춥다고들 한다. 첫 눈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찾아왔다. 가로등 빛 아래로 흩날리는 눈, 얇게 쌓인 눈에 남긴 발자국 같은 사진이 곳곳에서 올라오고 친구는 한파주의보의 알림을 내게 전송하며 말했다. “넌 좋겠다. 여긴 너무 추워.” 따뜻한 도시에 3개월간 집을 얻었다. 바쁘게 풀어지고 싸지던 내 배낭은 장롱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몸에 박제한 듯이 챙기고 다니는 여권은 책상 위 파우치에 곱게 넣어놓았다. 집 근처에 요가를 다닐 수 있게 짐도 3개월 끊었다. 사실 나도 어딘가에 속해있고 싶었다. 어느 국가에, 어느 도시에, 어느 집에. 조금 더 안정감을 느끼면 내 마음도 지금보다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택한 결정이었다. 집을 얻은 후 .. 더보기